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파주에 있는 절를 소개해드립니다.
01. 전통사찰이란?
전통사찰이란 전통사찰보존법에 근거하여 민족문화 유산으로써 역사적 의의와 문화적 가치를 가진 사찰을 일컫는다. 전통사찰 지정절차는 사찰 주지가 시·도를 경유하여 문화체육관광부에 신청하며, 문화체육관광부는 현지 출장조사 및 전통사찰지정 자문회의 자문을 거쳐 지정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02. 파주시에 있는 전통사찰
1. 흥국사(전통사찰 제38호)
- 창건시기: 661년
- 창건자: 원효대사
-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한미산(漢美山, 일명 노고산) 남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661년(신라 문무왕 1) 당대 최고의 고승 원효대사가 흥성암(興聖庵)이란 이름으로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조선 제21대 왕 영조가 자신의 생모 숙빈 최씨(淑嬪崔氏)의 묘소인 소령원(昭寧園)에 행차하는 길에 이곳에 들러 묵었으며 이때 절 이름을 흥국사로 바꾸게 하고 직접 약사전의 편액 글씨를 써서 하사하였다. 이후 국가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왕실의 원찰로 삼았다.
2. 상운사(전통사찰 제39호)
- 종 파: 대한불교조계종
- 창선시기: 신라시대
- 창건자: 원효
- 소재지: 경기 고양시 북한동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를 이루는 북한산 원효봉(元曉峰) 남쪽 중턱에 있다. 신라 때 원효(元曉:617∼686)가 삼천사(三千寺)와 함께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조선 중기 이후 승병들이 머물렀던 절이다. 1722년(조선 경종 2) 승병장 회수(懷秀)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노적사(露積寺)로 바꾼 것을 1813년(순조 13) 승병장 태월(太月)과 지청(智廳)이 중건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3. 태고사(전통사찰 제37호)
- 종 파:태고종
- 창건시기:고려 말기
- 창건자:원증국사
- 소재지: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15
14세기 후반, 원증국사(圓證國師) 보우(普愚)가 창건한 사찰로, 중흥사지 동남쪽 태고대에 서 있는데, 원래는 중흥사의 부속 암자였다.
중흥사는 고려 초기에 지어진 사찰로 1828년(순조 28) 대웅전과 만세루를 중건해 세력을 키웠으나 1894년(고종 31) 화재를 만난 뒤 1915년 홍수까지 겹쳐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구암봉 기슭의 긴 계단 위에 대웅전이 서향으로 서 있고, 그 옆에 1385년(고려 우왕 11)에 세운 높이 2.3m, 너비 1m, 두께 24cm의 태고사 원증국사탑비(보물 611)와 비각이 서 있다.
4. 무량사(전통사찰 제1호)
- 종 파: 한국불교법화종
- 창건시기: 1895년
- 창건자: 순빈 엄씨
- 소재지 :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한국불교법화종에 소속된 사찰로 북한산성 입구에 있다. 1895년(조선 고종 32) 고종의 후궁인 순빈(淳嬪) 엄(嚴)씨가 창건하였다. 순빈은 이곳에 산신각을 짓고 약사불좌상과 산신탱화를 모신 뒤 백일기도를 올려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이 바로 영친왕 이은(李垠: 1897∼1970)이다. 그 뒤부터 이 절은 백일기도를 올리면 소원을 들어 주는 사찰로 알려져 원당(願堂)이라고 하였다.
5. 국녕사(전통사찰 제203호)
- 고양시 덕양구 대서분길 268(북한동)
북한산성 안에 자리했던 주요 사찰들은 대부분 1712년 성능(聖能) 스님이 북한산성 도총섭이 된 이후에 승병이 머무르는 군영(軍營)으로서 창건되거나 중창이 되었다. 북한산성 가사당 암문 아래에 자리한 국녕사도 1713년 승병(僧兵)의 군영이라는 목적으로 창건된 사찰이다. 당시 승군들은 북한산성 수비와 관리를 책임지는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승군이 머무를 수 있는 도량은 필수적이었다.
창건 이후 국녕사는 갑오경장으로 의승군(義僧軍)이 폐지 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그러나 이후 노역에 지친 많은 스님들이 떠나게 되어 한국전쟁 이후까지 폐허로 남게 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국녕사가 편안하면 나라가 편안하다”고 한다. 이는 도성의 외곽에서 수비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던 국녕사의 역할을 잘 표현한 말인 듯하다. 한국전쟁 이후 보경(寶鏡) 스님에 의해 법등을 다시 밝히게 된 국녕사는 1991년 화재로 소실이 되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다.
지금의 국녕사는 1998년 폐허를 딛고 가람을 중창한 것이어서 예전의 모습은 찾을 길 없다. 그러나 사찰의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르는 호국의 의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다.
6. 덕암사(전통사찰 제204호)
- 소재지: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145-63
북한산은 수도권에서 가장 많은 등산객의 발길이 이어지지만 북한산에 ‘석굴암’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효봉 아래에 자리한 덕암사는 자연 그대로 형성된 바위 굴 속에 법당이 마련되어 있다.
정식 등산로가 아닌 데다 주변에 안내판도 없어 신도가 아니면 이 절의 ‘석굴암’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덕암사에는 2개의 굴법당이 있는데 대웅전과 약사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중 특히 대웅전은 큰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는 널찍한 바위 아래에 출입문을 설치하지 않았다면 그저 커다란 바위쯤으로 보일 듯하다. 이 곳 덕암사의 석굴은 인접한 ‘원효봉’이 말해주듯 신라 때 원효대사가 기거했었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삼국 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원효대사가 이곳에 머물며 수도를 하면서 통일을 기원했다고 한다. 현재 석굴은 안쪽으로도 수십 m에 이르는 굴이 연결되어 있는데 석굴의 앞쪽이 법당으로 사용되면서 안쪽은 막아 두었다고 한다.
부처님이 모셔지고 실내에 마루도 까는 등 동굴의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지만 천장 가운데는 연등을 달지 않고 자연 그대로 놓아두어 이곳이 석굴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또한, 석굴 안쪽에서는 약수가 흘러나와 실내 습도를 조절해 주면서 음용수로도 쓰이고 있다.
7. 중흥사(전통사찰 제104호)
- 소재지: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고려 말기의 고승 보우(普愚)가 중수하였다. 이 절이 대찰(大刹)의 면모를 갖춘 것은 1713년(숙종 39)에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이다. 축성 당시 30여 칸에 불과한 사찰이었으나, 성이 완성된 뒤 증축하여 136칸을 만들었다.
성내에는 성문과 수문(水門), 장대(將臺)와 창고 등을 지키기 위한 승군(僧軍)이 주둔하였다. 이 절은 승군이 주둔하였던 북한산성 안의 용암사(龍巖寺)·보국사(輔國寺)·보광사(普光寺)·부왕사(扶旺寺)·원각사(圓覺寺)·국녕사(國寧寺)·상운사(祥雲寺)·서암사(西巖寺)·태고사(太古寺)·진국사(鎭國寺) 등을 관장하였다.
왕실에서는 8도의 사찰에 영을 내려 1년에 6차례에 걸쳐 번갈아 의승(義僧)을 뽑아 올리게 하여 11개 사찰에 주둔시켰다. 승군의 정원은 360명으로 11개 사찰에는 각각 수승(首僧) 1인과 승장(僧將) 1인을 두었으며, 이들을 총지휘하는 본부로 승영(僧營)을 설치하고 승대장(僧大將) 1인을 임명하여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을 겸임하게 하였다. 이 절은 승대장이 머물렀던 북한산성의 승영이었다. 그리고 이들 승병들의 주둔에 필요한 물품과 군기물(軍器物)을 저장하기 위한 승창(僧倉)을 이 절을 비롯한 여러 사찰에 두었다. 승영 당시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앞쪽에는 누각인 만세루(萬歲樓)와 나한전(羅漢殿)을 두었고, 동쪽에는 산신당(山神堂)이 있었다고 하며, 대웅전 안에는 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었다. 그러나 1915년에 홍수로 무너진 뒤 중건되지 못하였고, 현재에는 주춧돌과 축대만 남아 있다.
8. 봉성암(전통사찰 105호)
- 소재지: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1713년(숙종 39)에 총섭승(摠攝僧) 성능(性能)이 창건하였다.
숙종 때의 북한산성 축성 당시 산성의 수호를 위한 승군(僧軍)을 거주하도록 하기 위해서 창건한 12개 절 중의 하나이며, 최초의 규모는 25칸이었다.
그 뒤 1860년(철종 11)에 중수하였는데, 보담(寶曇)이 쓴 상량문에 의하면 그 당시까지 상당히 많은 승려들이 머물렀고 많은 수의 신도를 가지고 있었던 절임을 알 수 있다.
그 뒤의 중건 및 변천에 관한 기록은 알 수 없으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창건주이자 북한산성 도총섭을 맡았던 성능의 사리탑이 있다.
9. 노적사(전통사찰 제201호)
- 소재지: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311-35
진국사(노적사)는 1712년(숙종 38) 당시 팔도도총섭이었던 계파성능(桂坡聖能) 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당시 북한산성에는 산성을 축조하고 관리하는 많은 승군들이 머무르고 있었는데, 성능스님은 중요시되는 요충지에 11개의 사찰을 창건하고 승군이 머물게 하였다. 진국사는 이 때 창건된 11개의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그 후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소실되어 빈터만 남게 되었는데, 1960년 무위(無爲)스님과 창암 유흥억거사, 박금륜행, 김진공성, 불자 등이 복원하여 노적사라 이름 하였다.
이렇게 다시 시작된 노적사는 성능 스님의 호국의지가 담긴 호국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노적봉의 웅장한 자태는 사찰을 옹호하고 있는 신장의 위신력을 보여주고 있고, 끊이지 않는 국태민안의 발원기도는 성능스님의 뜻을 이어가는 노적사의 크나큰 원력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이 세상 하나뿐인 당신 행복하시길 바라고 무두 함께 행복해지길 기원합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늘 함께하시고 가정의 행복이 깃드시기 바랍니다. 석가탄신일 인사말 이미지입니다. 원하시는 소원 성취하시고 부처님 전에 두 손 모아 합장 축원드립니다.
부처님 오신날 가볼만한 강화도 전통사찰(절) - 백련사/보문사/적석사/전등사
부처님 오신날 가볼만한 강화도 전통사찰(절) - 청련사/청수암/정수사